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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인생

by 짜오푸신 2022. 10.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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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 위화, 푸른숲

푸구이라는 노인이 지금까지 살아온 과정을 회상하는 이야기. 연휴 동안 밤을 새워 다 읽어 버렸다. 최재천 교수의 ‘통섭의 식탁’에서 줄거리를 맛깔나게 묘사하고 있길래 당장 빌려 읽어보게 되었다.

부잣집 도련님 푸구이가 도박에 빠져 집안을 몰락시키게 만들고 전쟁에 끌려갔다가 살아서 돌아와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살아가려고' (중국어 제목은 후오저 活着, 조사 ‘着’가 붙으면 계속해서 ‘~하는 중’, ‘지속하다’의 어감을 나타냄, ‘살아가는 중’, ‘계속 살아가다’로 해석됨) 애쓰는데 불운이 끝없이 이어진다. 주변인이 자꾸 병들거나 죽는다.

중반까지는 마음 아파하며 읽다가 하도 죽어 나가니 후반으로 가면 이제 또 누가 죽는가 보다 식상하게 느껴지는 사태가 벌어졌다. 독자의 무뎌진 감정 탓도 있겠지만 뒤로 갈수록 작가의 힘도 달리는 것이 아닌가라는 추측도 들었다. 초중반 한 인물을 둘러싼 구경거리가 풍부했던 서사가 (이제 더이상 죽을 사람이 없어서인지) 누구는 이렇게 죽었다는 간단한 기록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모두 다 죽고 푸구이 노인만 살아남았다. 그래도 나는 살아남았으니 이것을 해피엔딩이라 할 수 있을까? 어차피 모든 사람은 죽으니 부와 명성을 이루기 위해 혹은 대의를 위해 악착같이 살 필요 없이 오로지 끼니 걱정 없는 본능적인 삶에만 집착해 마지막에 살아남는 자가 승자라면 인간의 삶은 너무도 하찮은 것이 아닐까.

p.296
룽얼과 춘성의 진취적 삶을 비극적으로 매듭짓고 있듯이 대다수 중국민이 역사의 파고 속에서 체화한 무사안일주의를 무비판적으로 수긍하고 들어간 측면이 강하다.
중국의 오늘은 억압적이고 폭력적인 현실에 그대로 주저앉을 수만은 없는 대항과 전진의 피어린 과정의 소산이다. 그 속에 일신의 안일과 가족의 안녕을 과감히 떨치고 나섰던 수많은 이름 없는 영웅들의 빛나는 영혼에 루쉰 선생처럼 꽃다발 하나 조용히 얹어놓을 수는 없었을까.


작가가 이 소설을 통해 말하고 싶었던 것이 무엇이었는지 며칠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삶의 허무함을 말하고자 한 것인지 중국의 무사안일주의를 돌려 비판한 큰 그림의 소설이었는지 찜찜하게 남아 있다. 같은 책을 읽은 사람들과 실컷 책 수다를 를 하면 좋을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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