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읽고 쓰는 자
요즘 읽은 책

생에 감사해

by 짜오푸신 2023. 8. 10.
반응형



생에 감사해 – 김혜자, 수오서재
 
 
사람이 이렇게 살 수도 있을까? 김혜자라는 사람이 인생을 돌아보는데 평생 해 온 일 밖에 기억에 남아 있질 않다니. 그것도 너무도 생생하게. 작품에 참여했던 배우들과의 에피소드, 작품의 특징, 작가와의 관계, PD와 스태프들의 분위기 등등 너무도 생생하게 수십 년 전 일까지 기억하고 있다. (이 책은 편집자와의 인터뷰, 배우의 일기 등을 토대로 재구성한 것)



 
어떻게 내 삶을 되돌아보면서 일 얘기밖에 할 게 없는걸까? 일이 곧 일상, 일상이 곧 일이 되어버린 걸까? 무엇이 진짜 '나'이고 직업인으로서의 '나'인지 구분이 되지 않는 물아일체. 피아니스트 조성진이 아직은 음악 외에 하고 싶은 것을 못 찾았다고 하더니 김혜자 배우님도 평생 연기 외에 하고 싶은 것이 없었나보다.
 


김혜자 배우님을 떠올리면 순수함이 떠오른다. '나는 아무 것도 몰라요'와 같은 순진함이 아니라 장인 정신에 가까운 오로지 하나밖에 모르는 직업정신이 사람을 해맑게 만든 것 같다. ‘달인’ 프로그램을 보며 오랜 세월 단련한 기술에 우리가 넋을 놓고 감탄하듯이 내 전부를 건 사람들 이야기는 큰 감동을 준다.



 
더 즐겁고 잘할 수 있는 일은 없는지 늘 두리번거리는 나에게 지금 이 일은 천직이 아닌건지 만족과 감사함을 모르는 건지 생각해볼 문제다.
 

p.20
나는 평생을 배우로 살았지만 성공한 배우가 되는 법은 말하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슬픈 배우가 되는 법은 말할 수 있습니다. 배우로서 생생하게 살아 있지 않고 다른 모습으로 하루하루를 보내는 것입니다.
p.55
죄송스럽게도 가끔씩 나는 두 아이의 엄마라는 것, 그리고 아내와 며느리 위치를 까맣게 잊고 배우 김헤자로서만 있고 싶은 순간을 자주 갖게 되었습니다. 칭얼대는 두 아이가 나 혼자만의 세계를 방해하면 아이들한테서 도망가 골방으로 숨어 버렸습니다. 정말로 혼자이고 싶을 때가 많았습니다. 엄마와 아내로서는 낙제점이었습니다.
p.59
늘 삶의 한쪽에 죽음이 함께했습니다. 신이 나를 그런 사람으로 만드셨습니다. 그리고 그 허무에 더 깊이 빠지기 전에 다음 작품에 온 힘을 다해 매달리게 되었습니다. 어찌 보면 돈과 명예가 아니라 그 천성적인 허무가 나에게는 연기 생활에 더욱 전념하게 한 원동력이었습니다. 나 자신은 죽음을 생각하지만 사람들은 내 연기에 위로받게 하고 싶었습니다.
‘살아, 네 힘으로 살아. 네 힘을 다해, 죽지 마.’라는 결심이 나를 살게 했습니다.

 

p.224
사람들은 내가 현모양처인 줄로만 압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나는 살림도 못하고, 대본만 받으면 그날부터 대본 속 인물이 되어 버려서 식구들은 잊고 살았습니다. 그런데도 남편과 아이들은 내가 배우이니까 당연하다고 인정을 해 주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배우로서 잘해야만 했습니다. 내가 가족에게 남긴 자잘한 상처들이 흐지부지 묻히지 않도록. 가족에게 상처를 주면서 배우의 길을 걸었기 때문에 배우로서 떳떳하지 못하면 정말 면목이 없는 일입니다. 나를 배우로 인정해 주는 가족의 헌신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의 내가 있습니다. 최선을 다해서 나에게 부끄럽지 않은 배우가 되어야 한다고 늘 생각했습니다. 그래야 가족에게 미안하지 않고, 부끄럽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요즘 읽은 책'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안~~~일한 하루  (0) 2023.09.06
상관없는 거 아닌가?  (0) 2023.08.15
그럼에도 불구하고  (0) 2023.08.09
60부터 인생을 즐기기 위해 중요한 것  (2) 2023.08.08
소방관들을 위한 특별한 한 끼  (2) 2023.07.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