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관없는 거 아닌가 - 장기하, 문학동네
저녁 설거지를 마치고 전공 책을 읽기 전 잠시 잡았다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었다. 강원국 작가님의 책 제목 ‘나는 말하듯이 쓴다’가 떠오르는 필력이다. 방송 등을 통해 접한 ‘장기하’라는 사람의 말투, 말할 때의 표정과 몸짓이 떠오를 정도로 생생하다. 한편 이미 알려진 사람이기 때문에 더욱 생동감 있게 글이 잘 읽히는 건 아닐지 비판적으로 생각해보기도 했다. 물론 일기를 쓰듯 솔직담백하게 털어놓는 자기 이야기와 맛깔난 표현들에서 그 사람의 깊은 사유와 내공이 느껴졌다.

부럽다는 생각을 했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유명한 대학을 가기 위해 10대를 치열하게 산 덕에 그 배경으로 가수로도 성공하고, 하고 싶은 만큼만 골라서 일하며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해탈의 경지에 이르게 된 것일까? 결국 인생은 고생 총량제인가, 일찍부터 고생을 몰빵할 것인가 서서히 조금씩 평생 나눠서 할 것인가, 어느 시기에 바짝하고 이후로 면제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하고싶은 것만 골라서 할 수 있는 자유도 마냥 좋은 것만은 아닌 모양이다. 강제성이 없을 때 조심해야 할 것이 삶에 대한 허무감 같았다. 그것과 싸우는 것도 만만치 않음을 엿볼 수 있다. 직장을 다닌다는 것은 시간의 노예가 되는 것일 수도 있지만 대신 잡생각을 할 틈이 없어진다는 것은 장점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p.116 나는 하고 싶은 것만 하며 산다. 그런데 이것은 달리 말하면 하고 싶은 것이 없을 때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뜻이 된다. 나는 매일 아침 눈을 뜨면 하루를 어떻게 보내야 할지 생각한다...그러니까 어찌 보면 나는 잠에서 깨는 순간 출근을 하는 셈이다. 정신이 들자마자 ‘너는 무엇을 하고 싶냐’고 스스로에게 묻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뾰족한 수 없이 하루를 지나 보내는 일에 익숙해져야 한다. 너무 실망해서는 안 된다. 그래야 크게 좌절하는 것을 피할 수 있다. 그리고 하루의 어느 순간에는 스스로 퇴근해야 한다. 그런데 이 퇴근이라는 것도 간단하지 않다. 정해진 장소에 갔다가 집에 돌아오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p.119 “하고 싶은 것 하며 사니 좋겠다”는 말을 듣는 일이 종종 있다. 부러워서 하는 말이니 으쓱할 만도 한데, 그때마다 조금 쓸쓸한 기분이었던 것 같다. ‘나도 늘 좋은 것만은 아닌데’라는 마음이었달까. 자유롭다는 것은 곧 막연하다는 뜻이고, 막연한 삶은 종종 외롭다. 이끌어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데 어떻게든 해쳐나가야 할 때 외롭지 않은 사람이 없지 않겠는가. |
라면, 냉장고, 자동차, 달리기 등 글감이 안 되는 것이 없다. 미술 학원에서 정물화를 연습하듯 매일 한 대상을 놓고 꾸준히 쓰는 연습을 하면 어떠한 소재로도 글이 쓰여질까 궁금해졌다.
p.78 내 차는 현대자동차에서 나온 ‘아이서티’다. 탈 때마다 기분이 좋아지는 훌륭한 자동차다. 하지만 솔직히 “아이서티를 타다니 정말 부러운걸”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많지는 않은 것도 사실이다...필요란 사람에 따라 다르다. 그분들은 아마도 내가 느끼지 못하는 어떤 이유에서 비롯된 합리적인 선택을 했을 것이다. 다만 나 스스로에게 불필요한 무언가를 취하지 않고 살아가고 있다는 것에 만족감을 느낀다. 그것은 돈을 아끼고 말고와도 좀 다른 문제다. 인생에 군더더기가 없다는 데서 오는 쾌감이다. |
p.132 이런 나지만 그래도 십 년이 넘도록 흥미를 잃지 않고 해온 운동이 한 가지 있다. 달리기다. 물론 하루도 빠짐없이 달려왔다든지 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나 같은 사람이 꽤나 있을 법한데, 그해에 무라카미 하루키의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읽고 아, 나도 이렇게 꾸준히 달리는 사람이 되고 싶다, 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어 한동안 게을리 하던 것을 다시 시작하게 되었다. 하루키의 에세이를 읽다보면 아, 나도 이런 사람이 되고 싶다, 하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
읽으면서 내내 하루키 글을 참 닮았다, 소박하면서도 위트 넘치는 글이 읽기 참 편하다 생각했는데 하루키에 대한 팬심도 드러내고 있다.

인생 무상의 슬픔을 아름답게 여기는 섬세함, 소박한 삶을 지향하는 가치관, 인간 관계에 대해 깊은 고민 등 닮고 싶고 공감과 위로가 되는 부분이 참 많았다. 문학동네라는 대형 출판사가 가수의 에세이를 기획했다는 것만으로 거물급 재능을 지닌 작가라는 반증일테이니 다음 작품도 기대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