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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판사 유감

by 짜오푸신 2022. 8.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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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 시절에 공부를 참 안 했다. 시험과 성적에 대한 불안함은 있었지만 눈 질끈 감고 회피하면 그만일 뿐 그 공부가 나를 위한 것이라는 생각까지 못 했던 것 같다. 조금 더 자신을 귀하게 여겼더라면 고되고 힘들더라도 경쟁의 치열함에 뛰어들어 봤을 텐데... 고3 입시를 앞두고 벼락치기로 공부를 미친듯해봤고 성적에 맞춰 대학을 갔고 졸업 후 취업 재수를 하며 또 4당 5락의 신화를 써봤다.

남편은 학창 시절 공부를 참 잘했다. 공부 잘하는 사람들이 가는 대학도 나왔고 무엇이 되겠다는 야망 때문이 아니라 일찍부터 자기애가 강했던 것 같다. 최근의 둘을 비교하자면 딱 필요한 만큼만 공부를 했던 나는 지금도 공부에 목말라하고 늘 책을 가까이하는 반면 대학 졸업까지 최선을 다해 공부했던 남편은 이제 공부를 하지 않는다.

아이가 초등학교 저학년 때인가 피아노 학원 친구들과 서로 엄마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던 중 우리 엄마는 매일 공부를 한다는 얘기를 했나 보다. 꼬마들이 놀라 어른들도 공부를 하냐고 반문을 했다고 한다. 공부가 쓸모 때문에 하고 목적이 달성되면 영원히 안 할 수 있는 것이라면 공부란 얼마나 끔찍한 것인지 어른들 스스로 입증하는 꼴이다.


책을 멀리하는 남편에게 추천해 줬다가 뜻밖의 재밌었다는 피드백을 들었던 '개인주의자 선언'의 문유석 판사님의 예전 글 묶음이다. 법정 에피소드들이 신선했고 법과 사회를 바라보는 냉철한 시선에 배울 점이 많았다. 특히 치열하게 공부를 했던 사람으로서 비정상적인 학벌주의에 대해 일갈하는 부분에 공감이 갔다.

 

p.175
하버드라는 특정 대학에 들어가기자체가 사회에서 어떠한 독자적인 가치를 갖고 있습니까? 대학 입학 자체가 인생의 한 목표가 될 수 있습니까? 그 대학 간판이 남은 인생 동안 자기 능력과 성실성에 대해 새로 증명할 필요 없는 자유이용권 같은 겁니까?
우리는 아이들에게 나중에 커서 뭐가 될래?’라고 묻지, ‘나중에 커서 어떤 일을 하고 싶어?’라고 잘 묻지 않는 것 같습니다. 뭐가 되고, 어느 대학에 들어가는 것은 다 어떤 일을 하기 위한 방편에 불과한 것 아닙니까? 어느 대학에 들어가고, 뭐가 되는 것까지가 아니라 무엇이 된 이후 그 좋은 방편을 활용해서 무슨 일을 왜 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충분히 고민하고 있습니까?
 

  '개인주의자 선언'에 비해 다소 투박하게도 느껴졌는데 글이라는 것도 쓸수록 세련되게 빛난다는 것이 확연하게 느껴지며 글쓰기에 대한 새로운 동기유발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