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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남편의 레시피

by 짜오푸신 2022. 11.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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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대상'을 받고 작가 활동을 시작한 배지영 작가님의 에세이집이다. 취미가 직업이 된 경우가 아닐까 짐작된다.

 

요리를 못해서 안 하고, 안 하니까 못하는 사람, 차려주는 밥의 위대함을 '소년의 레시피, '남편의 레시피'에 담았다.

 

시아버지부터 시작된 집안 남자들의 요리 이야기로 음식 하나에 담긴 소소한 일상을 들려준다. 책 앞부분은 1950년대부터 요리를 잘했다는 시아버지 이야기로 시작된다. 지금도 집안일 중 여자들만의 영역으로 당연시되는 요리를 일찍부터 맡아하셨다고 한다. 거의 들어본 적이 없는 아버지 세대의 요리 이야기에 깜짝 놀라고 그렇게 가족을 위해 무한한 사랑을 베푸신 분이 향년 84세로 돌아가셨다니 더욱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뭔가 이런 다정한 아버지를 곁에 두고 화목한 가정 이야기가 쭉 이어질 것으로 짐작했던 모양이다.




아버지를 닮은 강성욱 씨는 출근하기 전 아침상 차리기, 퇴근 후 옷도 갈아입지 않고 저녁상 차리기를 지상 최대의 과업으로 여긴다. 강성욱 씨를 닮은 아들 강제규도 일찍부터 부엌일을 배우고 진로까지 요리 쪽으로 나아갔다고 한다. 요리하는 남자, 작가님의 가족 이야기를 보면서 가정 내에서 요리라는 것이 평등의 문제가 아니라 결국 헌신을 배우게 하는 영역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p.222
고뇌하는 중이라고 했던 강썬은 꼬마 아이처럼 퇴근한 아빠 등에 업혔다. 덕분에 강성옥 씨는 여전히 '젊은 아빠'처럼 활력을 유지할 수밖에 없었다. 자정 무렵에 들어와도 아침에는 국을 끌이고 반찬 몇 가지 만들고서 출근했다. 저녁에는 집에 들러서 먹을 거 하나라도 만든 다음에 약속 장소로 갔다.

 


둘째 강썬이 원치 않던 중학교에 배정받고 우울에 빠져 있던 어느 날 다 큰 아들을 업어주는 아빠의 모습에서 헌신이라는 가치가 떠올랐다. 흔히 아버지라고 하면 아들이 클수록 과묵하게 어느 정도 거리를 두기 마련인데 강성욱 씨는 엄마처럼 다정하게 모든 응석을 받아준다. 왜 그럴까? 그게 바로 요리하는 남자이기 때문이 아닐까. 일 년 열두 달을 가족을 위해 요리하는, 끊임없이 개인을 희생해야만 완성되는 요리로부터 헌신적인 사랑을 배우게 된 것 같았다.


 


사랑스럽게 묘사된 가족들의 모습이 읽는 사람도 유쾌하게 만든다. 읽다 보면 작가 부부의 모습에서 평생 가족을 위해 헌신하신 부모님이 떠올라서 또 어느 순간 훌쩍 커서 곁을 떠날 자식들의 모습이 떠올라서 슬프기도 한 단짠의 맛이 떠오르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