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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읽고 쓰는 자

읽고 쓰기38

29. 매직 피시 책을 많이 읽는다고 사람이 과연 달라질까? 내가 듣고 싶은 말만 마음에 새기며 더욱 독선적으로 변하지는 않을까? 이 책을 서평단 이벤트로 신청한 이유는 다문화에 대한 세상의 흔한 편견들을 알아보고 싶어서였다. 우리 집은 다문화 가정이다. 형부가 외국인이다. 조카들이 커갈수록 걱정이 많아진다. 외모는 외국인인데 어려서부터 한국에서 자라 가치관 등 기타 모든 것은 100% 한국인. 하지만 가게나 식당에서 영어로 말을 걸어올 때면 조카들이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갖고 살아가기란 힘들겠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 이는 아빠의 고향에 갔을 때도 마찬가지. 그들이 볼 때도 외국인처럼 보인다는 사실...과연 조카들은 스스로를 어느 나라 사람이라 정의할지 궁금하다. 처음에는 이 책이 다문화, 인종에 대한 편견을 소재로 한.. 2022. 10. 27.
28. 우리의 정원 맑고 깨끗한 소설이다. '에이세븐'이라는 아이돌 덕후인 정원이가 고등학교 입학 후 친구를 사귀며 점점 세계를 확장해 가는 이야기이다. 안전하다는 확신이 들기 전까지 나의 어디까지를 보여줄지 말지 그리고 보여진 모습이 나의 전부라 할 수 있을지 정원이는 내내 고민한다. 결국 책을 좋아하는 친구들을 만나 진짜 우정이 뭔지 조금씩 알아가게 된다. 나도 그랬다. 초대형 고등학교에 입학하여 그 많은 학생들 중 어느 무리에 속해야 할지 기웃거리며 단짝이 있는 친구들을 부러워했던 기억이 난다. 대학교에 입학 해서도 마찬가지였다. 서로 빨리 친해지려고 혹은 기존의 앳된 이미지를 타파하는 것이 지상 최고의 과제인 양 과장되게 행동하는 동기들의 모습이 너무 싫었다. 친해지기 위한 서로에게 잘 보이기 위한 적당한 가식도 용.. 2022. 10. 25.
27. 걷는 것을 멈추지만 않는다면 - ‘산티아고 길 위에서의 46일’ 걷는 것을 멈추지만 않는다면 – 이혜림, 허들링북스 올 초 제주도 올레길을 다녀왔다. 늘 동경하던 곳으로 다소 즉흥적으로 일을 벌였는데 대만족이었다. 3박 4일의 일정 중 동행이 있어 하루 한 코스씩 이틀을 걷고 마지막 하루는 관광을 했다. 이 여행의 가장 큰 성과는 비로소 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확실하게 깨닫게 되었다는 점이다. 발가락에 물집이 잡힐 정도로 무식하게 걷고 점심, 저녁 맛있는 음식과 막걸리 한 잔이 사람을 행복하게 만들었다. 걷는 동안은 마치 나에게 현실의 고민거리란 전혀 없는 것처럼 사람을 단순하게 만드는 걷기 그 자체가 정말 좋았다. 산티아고 순례길 걷기가 막연한 버킷리스트였는데 도전해 봐도 괜찮겠다는 용기도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고작 이틀 20km 미만의 짧은 여정과 800.. 2022. 10. 13.
26. 인생 인생 – 위화, 푸른숲 푸구이라는 노인이 지금까지 살아온 과정을 회상하는 이야기. 연휴 동안 밤을 새워 다 읽어 버렸다. 최재천 교수의 ‘통섭의 식탁’에서 줄거리를 맛깔나게 묘사하고 있길래 당장 빌려 읽어보게 되었다. 부잣집 도련님 푸구이가 도박에 빠져 집안을 몰락시키게 만들고 전쟁에 끌려갔다가 살아서 돌아와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살아가려고' (중국어 제목은 후오저 活着, 조사 ‘着’가 붙으면 계속해서 ‘~하는 중’, ‘지속하다’의 어감을 나타냄, ‘살아가는 중’, ‘계속 살아가다’로 해석됨) 애쓰는데 불운이 끝없이 이어진다. 주변인이 자꾸 병들거나 죽는다. 중반까지는 마음 아파하며 읽다가 하도 죽어 나가니 후반으로 가면 이제 또 누가 죽는가 보다 식상하게 느껴지는 사태가 벌어졌다. 독자의 무뎌진 감.. 2022. 10. 11.
25. H마트에서 울다 H마트에서 울다 – 미셸 자우너, 문학동네 책을 써본 적도 없다는 사람이 이런 글을 쓴다는 것, 얼마나 엄마를 떠나보낸 아픔과 충격이 절절하고 어떻게 하면 지난 시간들을 속죄할 수 있을지 그 절박함의 결과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그 감정이 누구보다 절실하게 공감되며 읽힌다는 사실에 더욱 슬펐다. 수필이지만 소설같이 흥미진진하게 잘 읽히는 책이다. 시몬느 드 보부아르도 엄마를 떠나보내며 '아주 편안한 죽음'이라는 책을 썼는데, 둘의 차이점은 뭘까? 보부아르는 죽음을 직면하며 그 순간까지도 삶과 죽음을 분석하려는 냉철함, 그리고 엄마이기 이전에 한 인간, 한 여자로서의 삶에 대한 철학적 접근이 탁월했다면 이 책은 어린 딸이 엄마와의 애증을 극복하고 어떻게든 아픈 엄마를 살려보려고 끝내 행복하게 떠.. 2022. 10. 6.
24. 지우개 좀 빌려줘 사계절출판사 서평단 활동 중. 9월 도서 리뷰를 이제서야 쓴다. 매달 청소년 소설을 받다 보니 택배를 받았을 때의 설렘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청소년 소설하면 떠오르는 밝음, 쾌활함 그리고 다소 엉뚱한 상상 등을 떠올리며 이 책 또한 그렇겠거니 읽기를 미뤄뒀다. 하지만 이 소설은 좀 다르다. 엉뚱한 상상은 맞는데 쾌활하지는 않다. 다소 어둡고 심오하다.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알 수 없는 삶에 대한 질문들 답을 알 수 없어 우울해지는, 어쩌면 답을 알기 때문에 우울해지는 삶과 죽음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 있어 그런 것 같다. p.135 집 밖으로 나오는 일이 왜 이렇게 어려워졌을까. 죽을 때까지 어려우면 어쩌지. 추신 없는 편지를 읽는 것처럼 앞으로 살날이 조금도 기대되지 않는다고 여기면서도, 윤희는 매번 .. 2022. 10. 6.
23. 하얼빈 하얼빈 – 김훈 장편소설, 문학동네 김훈 선생님의 소설은 언제나 좋다. 최근작인 ‘달 너머로 달리는 말’에서 말(馬)의 세상을 그린 세계관에 이 연세에 어떻게 이런 상상이 가능할까 매우 놀라웠고 최근 주목받고 있는 신작 ‘하얼빈’도 기대 한가득 읽기 시작했다. 다양한 감상평이 가능하겠지만 오로지 감성적인 측면에서 말하자면 이 소설은 대단히 매력적인 작품이다. 무뚝뚝하고 건조한 문체와 길지 않은 문장들이 속도감을 높여 단숨에 읽게 만든다. 누구나 다 아는 결말을 짐작하며 소설을 읽는데도 흥미진진해서 멈출 수가 없다. 역사 속 기록, 사료에 짧게 담겼을 장면들에 숨결을 불어넣고 그 상황에 했음직한 말들을 보태어 재구성한 이야기가 이토록 신선하고 사람을 울컥하게 만들 수 있다니... 소설을 읽는 중반부터 다 .. 2022. 9. 14.
21. 하루 한 마디 인문학 질문의 기적 책 읽기를 좋아하다 보니 주변에 다독가들이 꽤 있다. 가끔 그들을 경쟁상대 삼아 폭풍 독서를 해야겠다 결심하게 될 때도 있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는 이유는 아무리 많은 책을 읽어도 깊이 있는 통찰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독서의 이유는 뭘까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다. 힘들어도 읽고 쓰고 실천하는 과정이 동반되는 것이 진짜 독서라 생각하고 오늘도 묵묵히 책을 읽는다. 독서가 내 삶에 끼친 영향 중의 하나가 바로 질문 만드는 능력이 아닐까 한다. 강연 등의 마지막에 으레 하는 질문 시간에 모두가 침묵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짧은 시간에 하고 싶은 말을 압축적인 질문의 형태로 바꾸는 일은 결코 쉽지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다양한 책을 읽고 현상을 연결시키는 복합적인 시각을 갖추고 있을 때 그러한 순발력.. 2022. 8. 29.
20. 모로의 내일 중 선택 책을 읽다 보면 문득 이 이야기는 작가가 직접 겪은 일이다 싶은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이 단편집에 실린 6개의 작품 중 이선주 작가님의 ‘선택’이 특히 그랬다. 진짜 같았다. 소설 같기도 수필 같기도 한 직설적인 이야기가 마음에 들었다. 주인공이 청소년 소설 작가가 되어 독자에게 항의 메일을 받고 심란해하던 차 어떻게 자신이 작가라는 꿈을 갖게 됐는지 회상하는 현재와 과거의 두 이야기이다. 글쓰기 수행평가 때문에 보험 설계를 하는 엄마의 하루를 따라갔다 엄마의 사회적인 모습을 처음 목격하게 된다. 집에서는 늘 저녁 먹고 나면 드러누워 연속극만 기다리는 무기력해 보이던 엄마가 보험을 하나라도 더 계약하기 위해 악착같이 일하는 모습에 놀란다. 엄마도 그냥 사람이라는 걸 일찍(?) 깨닫게 된다. p.13 저.. 2022. 8. 26.
19. 통영 예술기행 책장을 덮으며 소름이 돋았다. 눈물도 핑 돌았고, 통영이 누군가에게는 평생 그리움의 대상이었다는 사실이 뭉클했다. 프로젝트 수업을 위한 지역 탐색 소재 찾기 정도로 접근했던 책이 이토록 마음을 무겁게 만들 줄 몰랐다. p.255 깊은 병환으로 생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때까지도 윤이상은 고향 통영으로 돌아오기를 간절히 바랐으나 끝내 그 염원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리운 마음을 달랠 길 없어 일본에서 배를 타고 통영 앞바다의 섬 욕지도 근처까지 와 통영을 보고 가기도 했습니다. 그때 바다 너머 있는 통영 땅을 향해 "충무 시민 여러분, 윤이상입니다."라고 외쳤던 음성이 녹음 파일로 남아 있는데, 가슴 깊은 곳 그리움을 통해내는 듯한 갈라진 목소리가 듣는 이들의 마음까지 아리게 만듭니다. 지금 이곳에서 산 .. 2022. 8. 25.